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(문단 편집) === [[기 드 뤼지냥]]에게 굴복하다 === 1186년 여름, 어린 왕은 [[아크레]]에서 급사했다. 티베리아스의 레몽은 조슬랭 3세와 성전 기사단의 계략으로 왕의 장례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, 이는 왕의 장례에 모인 십자군 영주들을 데리고 기를 새 왕으로 모시려는 이들의 속셈이었다. 이를 알게된 레몽은 대부분의 영주들을 [[발리앙 디블랭]] 형제의 영지 나블루스로 모이게 했다. 이를 보고 기 드 뤼지냥의 지지자들은 우르트메르의 토착 영주들이 새 왕을 멋대로 뽑으려 한다고 레몽을 비난했다. 기의 지지자들은 [[예루살렘]]에 모였고, 앞서 말한 네 서방 국가들의 충고를 뒤로하고 헤라클리우스 총대주교의 집전 하에 보두앵 5세의 장례를 치르고 [[시빌라]]를 새 왕으로 선출했다. 사실상 기 드 뤼지냥이 새 왕이 된 것이었다. 시빌라는 그녀의 대관식에 나블루스의 우르트메르 영주들도 초청했지만, 이들은 그녀의 대관식에 비토를 놓았다. 결국 귀족들이 참가하지 않은 대관식에서 시빌라는 기에게 왕관을 넘겼다. 레몽과 이벨린 형제는 시빌라의 어린 딸 이사벨라와 레바논의 토론 백작, 험프리 4세를 적법한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. 그러나 험프리는 내전을 원하지 않았기에, 다른 영주들을 설득하고, 예루살렘으로 가 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. 대부분의 영주들은 그의 설득에 기 드 뤼지냥을 섬길것을 맹세하였지만 티베리아스는 끝까지 왕위 계승의 파행을 논하며 충성을 거부했다. 결과는 내전이었다. 갈릴레아와 티베리아스, 트리폴리에 대한 전방위적인 [[예루살렘 왕국]]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.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살라흐 앗 딘은 티베리아스에 사신을 보내 예루살렘 왕위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. 하지만 이는 양면전술이었다. 그의 군대는 이미 이집트에서부터 집결하여 예루살렘 왕국의 숨통을 조일 준비를 마쳐있었다. 발리앙 디블랭과 [[성전 기사단]], [[구호기사단]]은 티베리아스에 화해의 서신을 보내고 기와 연합해 이를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. 결국 레몽은 살라흐 앗 딘을 막기 위해 기에게 충성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. 그가 가장 처음 한 행동은, 티베리아스 주변에 주둔해있던 [[아이유브 왕조]] 병력을 분쇄하는 것이었다. 레몽을 파문하려고까지 준비했던 기도 이러한 위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. 그들은 트리폴리 주변의 성 야곱 항에 모여 충성 맹세를 하였다. 이미 두 군대는 집결한 상태였고, 이제는 예견된 파멸 뿐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